요즘 저는 책을 '읽는' 것과 책과 '관계 맺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중입니다...
누구나 책을 읽지만, 그 책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혹은 잠들기 전 침대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책의 페이지를 넘기지만... 그 내용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스며들까요?
현대 사회에서 독서는 종종 '해야 할 일'의 목록에 들어가 있습니다.
한 달에 책 몇 권, 일 년에 책 몇십 권이라는 목표치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서둘러 페이지를 넘깁니다.
마치 독서가 체크리스트의 한 항목인 것처럼...
하지만 이런 '양'을 추구하는 독서가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는 걸까요?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를 만난 것은 그런 의문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작가가 아닌, 책을 사랑하는 한 독자로서의 헤세를 만난 것입니다...
그는 20세기 초반, 이미 현대 사회의 피상적인 독서 문화를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관계에 대해 놀라운 통찰을 남겼습니다.
헤세는 말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왜 책을 읽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
이 단순한 문장은 저의 독서 습관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저는 왜 책을 읽을까요? 무엇을 얻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인가?
독서가 삶을 바꾸는 순간
헤세는 많은 독자들이 두 가지 잘못된 이유로 책을 읽는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는 '뮐러 씨'처럼 교양을 쌓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마이어 씨'처럼 단순히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전자는 지식을 수집하는 데 급급하고, 후자는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도피하는 수단으로 독서를 활용합니다.
헤세는 이런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잘못된 독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부당하다.
무가치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자신에게 하등 중요하지도 않고 그러니
금방 잊어버릴 게 뻔한 일에 시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며,
일절 도움도 안 되고 소화해내지도 못할 온갖 글들로 뇌를 혹사하는 짓 아닌가?"
그렇다면 진정한 독서란 무엇일까요?
헤세는 명확히 말합니다.
"책은 오직 삶으로 이끌어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독서는 삶과 유리된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가 말하는 독서의 진정한 가치는 실질적인 변화에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불꽃 같은 에너지와 젊음을 맛보게 해주지 못하고
신선한 활력의 입김을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면,
독서에 바친 시간은 전부 허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서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종종 '살 의지를 상실한 도망자'로서 책을 찾습니다.
현실의 스트레스와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환상의 세계로 피신하기 위해서죠.
그러나 헤세는 이와는 정반대의 자세를 권장합니다.
"더 의식적으로, 더 성숙하게
우리의 삶을 단단히 부여잡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는 "굳은 의지를 품고 친구와 조력자들에게 나아가듯이" 책을 대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더 주체적으로, 더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한 도구로서 책을 활용하라는 의미입니다.
헤세가 말하는 바람직한 독서 자세는 세 가지 핵심 가치에 기반합니다.
"읽는 글에 대한 경의, 이해하고자 하는 인내, 수용하고 경청하려는 겸손함"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로 책을 대할 때, "책들은 자신을 활짝 열어 온전히 그의 것이 될 것"이며, 독서 경험은 삶의 일부가 되어 깊은 기쁨과 성장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독서 태도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먼저, 책을 고를 때 자신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을 것 같은 책을 선택하세요.
유행이나 다른 사람의 기대에 따라 읽을 책을 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책을 읽을 때는 충분한 시간과 집중력을 투자하세요.
급하게 읽고 소화하려 하기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며 그 내용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세요.
당신의 서재는 당신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
헤세는 책이 지닌 특별한 힘을 '마력(Magie)'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이라는 세계다"라고 말하며, 책이 단순한 물건이 아닌 정신의 경이로운 창조물임을 강조합니다.
책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지만, 헤세는 이러한 대중화가 오히려 책의 '마력'을 약화시켰다고 봅니다.
"오늘날 읽기는 누구나 배우지만,
얼마나 강력한 보물을 손에 넣었는지를진정으로 깨닫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책의 세계는 단순한 지식의 창고가 아니라, 끊임없이 확장되는 경이로운 정신의 우주입니다.
"뜰은 이내 공원이 되고 더 넓은 풍경이 되고 대륙이 되고 세계가 되고..." 이처럼 진정한 독자에게 한 권의 책은 무한한 세계로 확장되며,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 됩니다.
헤세에 따르면, 우리의 서재는 우리 영혼의 거울입니다.
그것은 외부의 기대나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 필요와 애착에 따라 형성되어야 합니다.
"각자 애착과 필요를 좇아 차츰차츰 모으게 되는 것"이 좋은 장서의 본질이며, 이는 마치 친구를 사귀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이렇게 모인 책들은 비록 겉보기에 소박해 보여도, 그 주인에게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 됩니다.
헤세 자신의 서재를 살펴보면, 그의 영혼이 어떤 여정을 거쳐왔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내 방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옛 독일문학 작품들"이라고 하면서도, "어느새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책장에 꽂혀 있으면서 내게 많은 것을 들려주고 가르쳐준" 동양 서적들(고대 인도와 중국 현자들의 글)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영혼이 이끄는 대로 형성된, 그러나 시야는 넓게 유지하는 장서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서재입니다.
헤세는 현대인들의 피상적인 독서 태도와 자신의 원칙을 대비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용이 가벼우면서도 재미있을 것 그리고 읽고 나서 간수해둘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을 원하지만, 헤세는 "가치가 없는 건 가급적 장서로 들여놓지 말고 일단 검증된 것은 절대 내버리지 않기!"라는 원칙을 고수합니다.
이는 책을 일회용 소비재가 아닌, 평생의 동반자로 대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책을 관리하는 방식에도 헤세의 철학이 드러납니다.
그는 책을 단순한 물건이 아닌, 정성껏 돌봐야 할 소중한 존재로 대합니다.
책은 강한 햇빛을 피하고, 먼지와 습기에 주의하며, 책들 사이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소중히 관리해야 합니다.
독서 중에는 책을 펼쳐놓지 말고 얇은 서표를 사용하며, 귀한 책은 보호용 싸개를 만들어 씌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세심한 배려는 책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우리 삶의 중요한 동반자임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자신만의 서재를 구축하려는 독자들에게 헤세의 조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먼저, 유행이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책을 선택하세요.
두 번째, 책을 선택할 때 내용뿐만 아니라 그 책의 물리적 품질(인쇄 상태, 종이 재질, 판형, 장정 등)도 고려하세요.
좋은 판본은 읽는 즐거움을 높이고 오래 보존할 가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재를 정리하고 관리하는 시간을 즐기세요.
이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정돈하는 의미 있는 의식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독자는 장서가이기도 하다
헤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올바른 독자라면 장서가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많은 책을 소유하라는 물질적인 조언이 아닙니다.
책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그 책을 소유하여 곁에 두고 반복해서 읽고 싶어 한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독서란 타인의 존재와 사고방식을 접해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친구로 삼는 것"과 같다고 헤세는 정의합니다.
이는 독서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작가와의 인격적인 만남이자 대화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한 번의 만남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마치 친구와의 관계가 시간을 두고 깊어지듯, 책과의 관계도 반복적인 만남을 통해 심화됩니다.
특히 헤세는 반복 독서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진정한 기쁨과 만족은 반복 독서를 통해 얻어지며,
두 번 이상 즐겁게 읽은 책은 꼭 구입하여 소장할 가치가 있다."
그는 괴테의 『친화력』처럼 같은 책이라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독서의 신비로운 측면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책이 우리의 성장과 함께 함께 성장하는 살아있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헤세가 제안하는 '세계문학 도서관'은 단순한 추천 도서 목록이 아닙니다.
그는 진정한 교양이란 특정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있게 만드는" 과정이며, 세계문학 탐구는 이를 위한 훌륭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최대한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과의 활발한 관계를 통해 인류의 삶과 공명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 수백 수천의 목소리들이 결국 모두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며,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신들을 부르며, 동일한 소망을 꿈꾸며, 동일한 고통을 토로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세계문학을 통해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과 경험에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헤세가 책을 통한 세대 간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책이 없다면 가난한 집"이라고 단언하며, 책을 알고 아끼는 부모만이 자녀에게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서재를 공유하며 자녀와 함께 작품을 경험하는 것은 몇 곱절 더 큰 기쁨을 선사하며,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는 의미 있는 행위가 됩니다.
헤세는 독서의 깊이를, '순진한 독자', '유희하는 독자', 그리고 '독자이기를 멈춘 독자'라는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가장 높은 단계인 세 번째 경지에 이르면, 텍스트는 더 이상 단순한 정보 전달 매체가 아니라 자유로운 영감과 창조적 사유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세상 모든 문학과 철학이 자기 내면에도 들어있음을... 우리 각자에게 창조의 원천이 하나씩 내재되어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헤세의 '장서가 되기'라는 조언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첫째, 자신에게 깊은 의미와 영감을 주는 책들을 선별하여 가까이 두세요.
둘째, 좋은 책은 한 번만 읽지 말고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읽어보세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와 통찰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책을 통해 배운 것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습관을 기르세요.
특히 자녀나 후배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함께 토론하는 것은 독서의 기쁨을 배가시킵니다.
헤세의 독서론은 100년도 더 전에 쓰였지만,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더 절실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넘쳐나는 콘텐츠의 바다에서, 우리는 점점 더 피상적인 읽기에 익숙해지고 있으니까요.
한 권의 책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경험은 점점 더 희귀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읽은 수많은 책 중에서 진정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우리의 삶에 실제로 변화를 가져온 책들... 우리의 시선을 바꾸고,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변화시킨 책들일 것입니다.
그런 책은 단 한 권이라도 우리 인생에 큰 가치를 지니지 않을까요?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의 가치가 점점 더 의문시되는 지금, 헤세가 말하는 '책과의 관계 맺기'는 어쩌면 형태가 아닌 본질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과 우리 사이에 형성되는 깊은 교감이니까요...
서재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마음속의 공간이 되는 시대에도, 헤세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내일부터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책을 대하려 합니다.
양보다는 질을, 속도보다는 깊이를 추구하며... 한 권의 책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경험을 소중히 여기려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제 안에 작은 세계문학 도서관이 만들어질지도 모릅니다.
책을 통해 만나는 것은 결국 타인의 영혼만이 아니라, 제 자신의 영혼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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