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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 review

평범한 삶의 위대함을 말하다 - 스토너

by doonablog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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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나요...?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공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자꾸만 초라하게 만들어버리니까요...


윌리엄 스토너는 평생을 한 대학에서 보낸 평범한 교수였습니다.
승진도 더디었고, 결혼 생활은 불행했으며, 학계에서 특별한 명성을 얻지도 못했죠.
하지만 그의 삶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는 이 질문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1. 50년 만의 귀환

1965년, 한 권의 소설이 조용히 세상에 나왔습니다.
출간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고, 이듬해 절판되었죠.
하지만 이 책은 50여 년이 지난 2010년대에 유럽을 중심으로 재발견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인 이언 매큐언, 줄리언 반스, 닉 혼비가 극찬했고, 수많은 독자들이 '인생의 책'으로 꼽았습니다.

이번 한국어판은 1965년 초판본의 장정을 완벽하게 복원했습니다.
표지의 폐허가 된 건물 일러스트레이션은 주인공 스토너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윌리엄 스토너는 미주리 대학교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가 죽은 지 일 년이 지났을 때 그를 기억하는 동료는 세 명뿐이었고,
학생들은 그의 이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소설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 인간의 삶이 이토록 담담하게 요약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2. 문학과의 운명적 만남

농부의 아들이었던 스토너는 새로운 농사법을 배우라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대학에 진학합니다.
그러나 2학년 때 필수과목으로 수강한 영문학 개론 수업에서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한 편이 그의 영혼을 뒤흔든 것이죠.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이 질문 앞에서 스토너는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발견합니다.
그는 농과대학을 그만두고 문학의 길을 선택합니다.
부모님에게 이 결정을 알렸을 때,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네 생각에 꼭 여기 남아서 공부를 해야겠거든 그렇게 해야지. 네 어머니랑 나는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다."

그 순간 스토너는 어머니가 소리 없이 마음 깊이 울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다락방으로 올라가 어두운 허공을 뜬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선택을 되새깁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발견한 것, 그 발견이 자신에게 가져다준 기쁨과 열정을 붙들고 싶을 뿐이었다."


스토너가 문학을 선택한 순간,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직업 선택이 아니라, 영혼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었습니다.

3. 시련과 고독의 나날들

스토너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스토너는 동료 교수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이디스를 처음 만납니다.
그는 이디스의 우아함과 세련된 모습에 매료되어 짧은 만남 끝에 청혼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혼여행에서부터 문제가 드러납니다.

 

"그녀는 그의 손길이 닿자 몸을 굳혔다.
그는 그녀의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입술은 차갑고 마른 채로 그의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디스는 육체적 접촉에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고, 스토너는 아내의 심리적 상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디스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정서적으로 방치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로 인한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한 것은
그녀의 모습, 그녀가 대표하는 것, 그녀가 그에게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4. 딸 '그레이스'의 탄생

결혼 생활의 불화 속에서도 스토너 부부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사건이 찾아옵니다. 바로 딸 그레이스의 탄생입니다.

 



"스토너는 아이를 품에 안고 그 작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처음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레이스의 탄생은 스토너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는 딸에게 깊은 애정을 쏟았고, 그레이스도 아버지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디스는 이런 부녀 관계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디스는 스토너가 그레이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면 방으로 들어와 아이를 데려가곤 했다.
'아이가 피곤해 보이네요,'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레이스의 눈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아버지의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이디스는 점차 딸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 했고, 스토너와 그레이스 사이의 관계를 방해했습니다.
그녀는 딸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며, 그레이스의 모든 것을 결정하려 했습니다.

 

 

"스토너는 이디스가 그레이스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등을 똑바로 펴고 앉으렴.
숙녀는 그렇게 앉는 게 아니야.'
그레이스의 어깨가 축 처졌고, 그녀의 눈에서 기쁨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이디스의 냉담함과 통제는 그레이스의 성장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한때 밝고 호기심 많던 아이는 점점 내성적이고 불안한 아이로 변해갔습니다.

"그레이스는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웃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항상 주변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스토너는 딸을 구하고 싶었지만, 이디스의 방해와 자신의 무력함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그는 서재에 틀어박혀 책과 연구에 몰두하며 현실을 피했고, 그 사이 그레이스는 점점 더 방황하게 됩니다.

대학에 진학한 그레이스는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술과 파티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집에 한 남자를 데려옵니다.

"스토너는 딸이 데려온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레이스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고, 눈빛에는 어떤 계산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스토너는 본능적으로 이 만남이 딸에게 좋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스토너의 우려대로, 그레이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급하게 결혼을 합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그레이스가 떠날 때,
스토너는 딸의 눈에서 공포와 후회를 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를 안아주고 작별 인사를 했을 뿐이다."


그레이스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그녀는 남편과 헤어지고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영혼은 깊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습니다.

"그레이스는 아이를 안고 현관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지쳐 있었고,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스토너는 그녀를 맞이하며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구하지 못했구나.'"


스토너와 그레이스는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오랜 세월 쌓인 상처와 거리감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저는 왜 이렇게 된 걸까요?" 그레이스가 물었다.
스토너는 한참을 침묵했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했을 뿐이야,"
그가 마침내 말했다.
"때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단다."


스토너는 이디스의 냉담함과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소원해집니다.

5. 갈등와 사랑

대학에서도 그는 정치적 음모와 갈등에 휘말립니다. 학과장 홀리스 로맥스와의 갈등은 그의 학문적 경력을 위협합니다.

 

"로맥스는 스토너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당신은 워커를 떨어뜨리고 싶은 거군. 그렇지?'"


이 한 마디로 시작된 갈등은 스토너의 남은 교수 생활 내내 그를 괴롭히는 그림자가 됩니다. 로맥스는 스토너의 승진을 방해하고, 그가 가르치는 과목까지 바꾸는 등 학문적 자유를 침해합니다.

그런 와중에 스토너는 젊은 강사 캐서린 드리스콜과 깊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그를 향해 열려 있었고,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았다."


캐서린과의 관계는 스토너에게 인생 최고의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로맥스의 위협으로 인해 결국 캐서린은 대학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 이별 후, 스토너는 다시 고독한 삶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묵묵히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문학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는 강의실에 들어서면 다른 모든 것을 잊었다.
그곳에서 그는 온전히 자신이 될 수 있었다."


5. 평범한 삶의 존엄성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소설의 첫 문장들은 한 평범한 교수의 일생을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하지만 이 평범한 삶의 이면에는 진정성 있는 열정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스토너는 자신이 사랑한 것들 - 문학, 교육, 그리고 순간의 사랑들 - 에 진심을 다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그의 존재 이유였다.
그는 강의실에 들어설 때마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스토너의 마지막 나날들은 암 투병으로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것이 실패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가 사랑했던 것들에 충실했던 한, 그의 삶은 성공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자신의 책을 손에 들고 지나온 삶을 돌아봅니다.

"책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가슴 위로 떨어졌다.
그는 그것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는 숨을 거두었다."


스토너의 삶은 외적으로는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는 학계에서 큰 명성을 얻지 못했고, 가정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했으며, 진정한 사랑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소명에 충실했고, 자신이 사랑한 것들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는 자신이 사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는 자신이 지켜온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성공한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의 평범한 하루하루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위대한 한 편의 소설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