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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 우리의 선택은 정말 자유로운가?

by doonablog 2024.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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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늘 아침 무엇을 마셨나요? 아메리카노? 라떼? 아니면 녹차? 

 

이 단순해 보이는 선택이 실은 당신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충격적이지 않나요? 하지만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하는 '취향의 계급화'입니다.

 


 

1. 취향, 보이지 않는 계급의 벽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취향의 차이가 사회적 신분을 구별 짓는다."

 

이 말은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즐겨 입는 옷, 심지어 마시는 커피까지도 우리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사람 vs 트로트를 즐기는 사람

- 유기농 식품을 선호하는 사람 vs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사람

- 미술관에 자주 가는 사람 vs PC방을 즐겨 찾는 사람

 

이들 사이의 차이는 단순한 개인 취향일까요, 아니면 그 이면에 숨겨진 계급의 차이일까요?

2. 아비투스: 우리 몸에 새겨진 사회적 DNA

 

부르디외는 이런 취향의 차이를 '아비투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아비투스란 우리가 자라온 환경과 경험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형성된 습관이나 성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선호합니다.

- 미술관에 자주 가본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미술관을 찾게 됩니다.

- 부모가 와인을 즐기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 와인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높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아비투스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되어, 마치 우리의 DNA처럼 작용합니다.

3. 자본의 삼각형: 경제, 사회, 문화

 

부르디외는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자본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

 

- 경제 자본: 돈, 부동산 등 물질적 자산

- 사회 자본: 인맥, 네트워크 등 사회적 관계

- 문화 자본: 교육, 지식, 예술적 감각 등 문화적 소양

 

이 세 자본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

1) 경제 자본이 풍부한 가정의 자녀는 좋은 학교에 다니며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습니다(문화 자본 증가).

2) 이 과정에서 형성된 인맥은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사회 자본 증가).

3) 좋은 직장은 다시 높은 수입으로 이어져 경제 자본을 늘리게 됩니다.

 

이렇게 세 가지 자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짓습니다.

4. 상징 폭력: 부드럽지만 강력한 지배의 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자본의 차이가 '상징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징 폭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제한하는 힘을 말합니다.

 

구체적인 예:

1) "명품 가방을 들어야 성공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인식

2) "ivy 리그 대학을 나와야 엘리트다"라는 믿음

3) "특정 브랜드의 커피를 마셔야 세련되어 보인다"는 생각

 

이런 인식들은 우리의 행동을 은연중에 제약하고, 때로는 우리의 경제력을 넘어서는 소비를 강요합니다.

5. 장(場): 우리 삶의 무대

 

부르디외는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을 '장'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면:

- 학교라는 장

- 직장이라는 장

- 예술계라는 장

 

각 장에는 그 장만의 규칙이 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자본을 활용해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합니다.

 

구체적인 예:

1) 학교라는 장에서는 좋은 성적과 다양한 활동 경험이 중요한 자본이 됩니다.

2) 직장이라는 장에서는 업무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능력도 중요한 자본이 됩니다.

3) 예술계라는 장에서는 독특한 창의성과 예술적 감각이 중요한 자본이 됩니다.

6. 힙스터: 저항인가, 새로운 계급인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힙스터' 문화는 어떨까요? 

 

힙스터들은 주류 문화에 반대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을 추구합니다.

 

예를 들어:

- 대량 생산된 커피 대신 로컬 카페의 수제 커피를 선호합니다.

- 유명 브랜드 대신 빈티지 옷이나 독립 디자이너의 옷을 입습니다.

- 대중적인 음악 대신 인디 음악을 듣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반문화'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문화 자본이 되어 또 다른 계급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

1) 특정 지역(예: 서울의 연남동, 뉴욕의 브루클린)에 모여 살며 새로운 '힙'한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2) 이들만의 언어와 코드가 생겨나 새로운 형태의 문화 자본이 됩니다.

3) 결과적으로 이 문화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새로운 형태의 계급이 만들어집니다.

7.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부르디외의 이론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첫째,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 우리의 취향과 선택이 정말 '우리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주입된 것인지 성찰해 봐야 합니다.

- 예: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영화, 음식이 정말 우리의 순수한 취향인지, 아니면 우리가 속한 사회적 그룹의 영향인지 생각해 봅시다.

 

둘째,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서로 다른 취향과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예: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힙합을 즐기는 사람을 폄하하지 않고, 서로의 취향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집시다.

 

셋째,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예: 문화 자본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공공 도서관이나 미술관 같은 시설을 더 많이 만들고, 이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지지합시다.

결론: 당신만의 19호실을 찾아서

 

부르디외의 이론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들려줍니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선택들이 사실은 사회적으로 결정된 것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는 절망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 『황금 노트북』에 나오는 '19호실'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취향과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

1) 자신의 취향을 기록해보세요.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세요.

2)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다른 계층,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교류해보세요.

3) 자신의 선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세요.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4) 사회적 압력에 무조건 따르지 말고, 때로는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지세요.

5) 당신만의 '19호실'을 만드세요. 그곳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고 표현하세요.

 

당신의 19호실은 어디인가요? 그곳에서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자신의 취향을 더욱 사랑하고, 동시에 다른 이의 취향도 존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만의 19호실을 찾아 그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시기를 응원합니다.

 

취향은 우리를 규정짓지만, 동시에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취향이 당신을 억압하는 족쇄가 아닌, 당신을 표현하는 날개가 되기를 바랍니다.